2007.01.08 18:58 Etc...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나라에도 소위 '밀리언 셀러'라는 것이 있었다. 대개 문화상품이 100만 이상 팔렸을 때 붙여지는 말이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는 기간동안 소리소문없이 이 '밀리언 셀러'라는 말이 종적을 감춰버렸다. 매체나 상품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초고속 인터넷의 확산인 것이고 '책'이라는 항목에 한정짓는다면 도서대여점의 등장이 그 시발점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도서대여점과 관련해서 살펴볼까 한다.

도서대여점의 등장
 도서대여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국민들의 별볼일없는 문화수준과 독서량, 독서능력의 저하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도서대여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만화책, 무협지, 판타지소설 등으로 이 글에서도 도서대여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런 책들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을 것이다.

도서대여점.... 아, 도서대여점....
 처음부터 도서대여점에는 만화책, 무협지, 판타지 소설만이 꽂혀있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그 때에도 비중은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서대여점은 도서관과는 다른다.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많이 빌려줄수록 많은 이득이 남는다. 많이 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상식의 수준이다. 당연히 많이 보고 많이 찾는 책을 가져다 놓아야한다.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볼까? 여기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책과 흥미진진한 만화책이나 무협지가 놓여 있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보겠는가. 묻지 않아도 십중팔구 뻔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지금의 도서대여점을 점령하고 있는 책들이 만화책, 무협지, 판타지소설 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고 이 결과에 다라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문제점이 뭐냐고?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졌으니,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면 좋았겠지만 실상 여러문제가 나타났다. 문제점이 명확히 구별되어 체계적으로 항목별로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문제들 서로가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어서 굳이 구별하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
 애초에 도서대여점의 등장배경이 어떠했는가 다시 생각해보자. 안 그래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곳곳에 도서대여점이 등장하여 도서관을 대신에 접근성을 높였다고는 해도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새삼스럽게 책을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한 처음부터 대단하지 않은 독서능력과 문화수준으로는 흥미위주의 책만 보게 되었다.
 게다가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건인가! 정가의 10%수준으로 감상할 수 있다니. 대체로 한 두번 보고 꽂아둘 책을 값싸게 한번 빌려보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람이겠는가. 어차피 한두번 볼 뿐인데 빌려보면 10배를 더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은 서점보다는 도서대여점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반문학은 소외받고 도서대여점용 책을 많이 '빌려'보게 되면서 독서능력도 조금씩 떨어지게 되었다. 만화책이라도 많이 보면 독서능력이 향상될 거라고? 과연 그럴까? 글쎄다. 만화책에 한정한다면 독서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독서능력을 포괄할 수가 있는가. 이쯤에 와서 도서대여점의 처음 취지는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자. 저하되는 독서량과 독서능력 때문이 아니었는가. 결과는 취지와는 반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문제가 여기에만 그친 것이었다면 이런 글이 써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도서대여점의 책은 혼자보는 것이 아니고 여러명이 본다. 한번 본 책을 사겠는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지 않는다. 도서대여점이 없었다면 이들의 반수 정도는 책을 사지 않았겠는가. 잠정적인 판매량의 손실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값도 아니거늘 독자들은 점점 도서대여점으로 몰린다. 결국 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은 일부 한정적인 사람들로 축소되었다. 그나마 도서대여점용 도서들은 많지는 않은 판매량일지라도 도서대여점이 어느정도의 고정된 판매량은 보장에 주게 되었지만, 도서대여점에서도 소외받은 일반문학의 판매량 타격은 상당히 크다. 판매량이 감소하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이익이 적어지게 된다. 이에따라 전개된 여러가지 방식들은 부정적인 영향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각설하고,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니 가격이 올라간다. 책을 사서보는 사람들만 피를 보게 되는 것이다. 빌려보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타격도 10%수준이니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책값이 오르면 사는 사람들은 더 적어진다. 그래도 어느정도로 가격이 형성되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가격은 오른다. 물론 원자재값과 물가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요컨대 독서수준과 능력저하에 따른 독서량감소에 이어 책이 잘 팔리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최근에는 도서대여점마저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리적인 여건이 좋은 일부 도서대여점들은 예외이겠지만 하나둘씩 폐업하는 모습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지만 경기불황 같은 당연해보이는 이유를 배제하면 두가지 정도일 것이다. 하나는 그나마도 도서대여점용 도서들을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게 아니라면 퀄리티가 그렇고 그런 획일적인 작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게 되어서』가 아닐까.
 첫번재 이유의 경우에는 그 자체의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사서 보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불법 스캔본의 유포가 원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두번째 이유를 본다면 일단 만화책의 경우는 접어두자. 만화책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만화의 판권을 사오는 경우가 전부라고해도 과언은 아니니까. 그러자면 문제는 흔히 장르문학이라 일컫는 무협지나 판타지소설로 넘어간다. 이런 장르문학도 처음에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소재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하루에 몇 권이라도 보는 독자들의 욕구에 발 맞추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수의 책이 나와야하게 되었고, 중간과정은 어찌되었건 다양한 작가들의 책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이 상황이 몇 년동안 계속되다보니 책은 『대여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나오는 목적이 뒤바뀐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한정적인 장르문학이다보니 소재도 점점 고갈 되어가고 이제는 누가 소설을 써도 뻔한 설정에 뻔한 내용이 되어버린 것이 대부분이다. 독자들은 그저 읽던 것이니까 읽도 할 일이 없으니 읽고 타성에 빠져들어 시간 때우는 식으로 책을 보기도 한다. 관성의 법칙이라는게 실로 무서운 것이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다보니 아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하지 않게 되었다. 출판사는 도서대여점에 집어넣는 것으로만 만족하게 되었도, 작가들은 이런 추세에 편승해서 답습적인 글들만 써내고 있고, 독자들은 그러한 책들을 보며 따분함을 달래고 있다. 어느 쪽에서도 작품의 질을 상승시키는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장르문학에 질려버린 일부 독자들은 일본의 라이트 노블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그렇게 많이 나와서 많이 보는데 도서대여점이 왜 폐업하느냐고? 알다시피 정가기준으로 하면 소설책값은 만화책값의 두 배 이상이다. 게다가 엄청나게 쏟아져나온다. 독자는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독자가 쏟아져 나오는 모든 책을 보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손실이 쌓이다보니 폐업하게 되는 것이다.

도서대여점 뒷담화
 현실개탄만 하다보니 글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이쯤에서 필자의 경험담인 재미없지만 재미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 몇 가지를 해 보겠다. 이는 도서대여점에서 일했던 필자의 경함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기보다 또 한번 분개하게 되는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도서대여점에는 책이 싸게 들어온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책에 따라 다르지만 정가의 70~80% 정도에 들어오게 된다. 이 정도는 다들 알 만한 내용이니 넘어가자. 그 다음은 '반품'이라는 것이다. 도서대여점에서는 책을 빌려준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대여점에서도 책을 빌린다. '빌린다'라는 말이 부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다. 도서대여점에서는 대체로 책을 깨끗이 보기를 요구한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도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실은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잘 나가지 않는 책은 반품하기 위해서이다. 2주 정도 보고 대여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싶으면 바로 반품시켜 버린다. 물론 적지만 일단 빌려준 대여수는 고스란히 도서대여점의 이익으로 남는다. 책을 빌려다가 빌려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잘 나가는 책은 꽂아두고 장기적인 이익을 남기겠지만 말이다.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대여점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기본급이다. 3100원.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냥 앉아서 혹은 서서만 있으면 되니까. 게다가 책도 그냥 볼 수가 있다. 세상에 어느 일이 쉽겠느냐만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도서대여점 아르바이트의 고충을. 일단 어느정도 일정한 이익이 남는 도서대여점의 경우에는 바빠서 책도 볼 수가 없다. 보고 싶어도 못 보거나 혹은 안 보게되기도 한다. 그 많은 책들의 중압감이란. 게다가 손님들의 시시콜콜한 요구라던가 책의 도난 같은 것에도 신경써야한다. 한 마디로 줄이자면 육체적이기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아르바이트이다. 그래도 도서대여점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전이랄까 그런것도 있으니, 그나마 어쩌다 사람들이 없을때 잠깐씩 보는 책의 재미라던가, 아니면 무료로 책을 빌려갈 수가 있다던가. 혹은 대여점에 들어오는 책값으로 책을 살 수 있는 것. 필자의 경우에는 책을 싸게 살 수 있었던게 제일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현실의 타개책?
 도서대여점이 문제의 핵심 중에 하나인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게다가 무턱대고 도서대여점을 다 없앤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오히려 인터넷 불법 스캔본 같은 것들이 더욱 난무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제시할 해결책은 꼭 어느 하나만 이루어진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하나만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그 방법들 모두가 조화를 이룰때 문제는 조금씩 풀려나가리라 생각한다.
 얼마전까지 문고판 도서라는 것이 있었다. 종이질은 좋지 않고 책의 크기는 작지만 값이 싼 보급형 책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문고판 도서는 종적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엇다.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진 듯. 이것도 역시 도서시장의 침체와 관련이 있다. 판매량이 감소하니 안그래도 저가형 도서인 문고판을 팔아봐야 이익은 얼마되지 않는다. 출판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문고판을 포기하고 고급화전략을 선택했고, 문고판 도서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책의 질은 좋아졌지만 값은 올라가게 되었으니 앞에서 줄기차게 말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것. 그나마 가격이 올라가면서 질이 좋아지는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른다. 잠깐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소위 선진국이라거나 독서강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의 팔리는 책이 문고판 도서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처럼 고급스러운 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들에게는 이런책은 소장용 도서이다. 값이 저렴한 문고판 도서는 부담없이 사볼 수가 있다. 한번 읽고 나면 좀처럼 다시보지 않게 마련인 것이 바로 책이다. 그런 상황에 비싼 책을 선뜻 사게될까?
 문고판 도서와 함께 필요한 것이 중고시장의 활성화이다. 한번 보고나면 꽂아두는 책.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이것을 손쉽게 현금화 할 수 있는 중고시장이 활성화된다면, 그만큼 책을 사는데도 부담이 적어진다. 물론 중고시장에서도 싼값에 부담없이 책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중고시장에서만 사고 팔고 하지 않겠느냐고? 책 보는 사람이 돈 생기면 뭘 살까? 질문을 하는것도 약간 우습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이나 옥션 등을 통해서 개인간에 소규모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좀 더 본격적인 아이템이 필요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만 해도 중고시장이 상당히 활성화 되어있다. 중고책 전문 체인점까지 있을 정도이니. 사실 이 체인점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은 모두 망할거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시장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중고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책을 사서봐야한다는 의식의 개혁이다. 기본적으로 사서보는 성숙한 의식이 없다면 중고시장의 활성화를 백날 외쳐봐야 무용지물이다. 기본적으로 사는사람이 있어야 파는사람이 있을 수 있다. 팔린 책이 있어야 중고로 내놓을 책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의식의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값싸게 책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사고 싶다해도 가격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결국 다시 문고판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세가지 대안은 독자적일 수가 없다. 세 가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발이 셋 달린 의자와 같이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이루어 나가야 하겠다.

글을 맺으며
 현재 한국의 독서인구는 그 옛날과 비교했을 때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았다.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위와같은 뭔가 결정적인 요소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비록 외국문학이지만 베스트셀러가되어 많은 판매고를 올린 D 코드 라던가 라이트노벨이지만 S의 우울이라던가 하는 책들이 좋은 소식을 들려줄 때면 새삼 감회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미디어믹스라는 요소 없이는 책 독자적으로 많이 팔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점이 되겠다. 아직은 죽지 않았다. 새는 알을 남겨놓고 죽었지만, 알이라는 가능성을 남겨놓고 죽었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한국의 출판시장과 도서문화가 알에서 깨어나 힘차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끝으로 별 볼일없는 필자의 하고싶은 말을 위해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편집장님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일어주신(읽어주실)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2006년의 끝과 2007년의 시작을 움켜잡고
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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